얼마 전 나와 신부님 두 분은 일정이 빽빽한 관계로 광주에서 오전 10시부터 있을 강연을 위해 서울 김포공항에서 오전 8시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 강연에는 200여 분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해서 우리는 아침 7시에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그것은 안개로 인해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막막하였다. 200여분이 강연을 위해 오전 10부터 기다릴 텐데 어떻게 이 상황을 수습할 것인가? 지금 광주로 KTX를 타고 가도 시간에 맞춰 갈 수 없을 텐데, 모인 분들은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무엇을 하며 기다릴 것인가? 또 사람들이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려줄 것인가? 해서 우리는 광주에 계신 한 신부님께 급히 연락을 해서 강연 마지막에 있을 미사를 미리 앞당겨 집전해 줄 것을 부탁하고, 오전 8시 KTX를 타고 급하게 광주로 갔다. 결국 강연장에는 오전 11시 30분이나 되어 도착하여, 1시간 반 늦게 강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갑자기 주어진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우리 셋은 모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우선 지금 이 상황에서 최대한 수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조치를 취한 후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광주로 향했다. 세 사람 모두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에 맞춰 계획을 진행하면 되었던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당장은 당황스럽지만 시간이 지나 광주에서 있었던 그날처럼 오후가 되면 그 상황은 종료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할 정도로 사람들과 함께 편하게 웃는 경우를 많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 강연을 일찍 듣기 위해 와서 기다린 사람, 오히려 늦게 도착한 사람, 갑자기 연락 받아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 행사를 준비하던 봉사들 등. 어떤 이들은 초조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기다리다가 가버렸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 모두에게 하느님께서는 각자 당신이 필요하다 생각하시는 일들을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이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상황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을 많이 체험한다. 당장은 황당하고 애절하고 긴박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걱정한다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그 상황은 마무리되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온을 되찾는다. 인생은 이런 일들의 반복이다. 마치 깨끗한 옷을 입고 길을 걷다가 누군가 걸레 빨은 물을 내 옷에 실수로 버렸을 때와 같다. 나는 화가 나고, 상대방은 미안해 할 것이며, 당장은 옷이 젖어 집에 가서 새로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화를 내어도 그 상황을 나는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 상황은 모두 종료된다. 옷도 내 감정도 모두 원위치가 된다. 결국 남는 것은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가?”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그저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에, 그 일을 통해 주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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