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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및 성찰

‘목적어’가 없는 사랑

by 손우배 2005. 10. 27.
우리 수도회 내에는 치매를 앓고 계신 신부님이 계시는데, 이 노(老)신부님을 옆에서 주로 돌보시는 신부님 역시 60이 넘으신 분이다.

치매에 걸리신 신부님께서는 상태가 좋을 때는 괜찮지만 좋지 않을 때는 함께 있는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하곤 한다. 물론 노(老)신부님께서 아무리 치매를 앓고 있다하여도 못해드리면 되겠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하루 온종일 돌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폭언과 과격한 행동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까지 상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묵묵히 돌보시는 한 신부님을 보면서, 물론 때로는 화도 내시지만, 심한 일을 당하시다가도 조금 지나면 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치매를 앓으시는 노(老)신부님과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돌보고 계시는 그 신부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저러실 수 있을까? 아무리 치매를 앓는 분이라도 힘들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환하게 웃으시며 대할 수 있을까? 나는 이를 바라보면서 문득 저 신부님께서는 “목적어가 없는 사랑”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노(老)신부님과 젊었을 때 관계에서 오는 정도 있겠지만, 우리같이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혈연관계가 없기에 혈연에 의한 정으로 그러한 사랑을 할 수는 없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할 때면 목적어에 초점을 맞춰 그 대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던가, 내가 베푼 사랑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에 민감하다. 내가 아무리 선한 목적으로 사랑을 전하다가도 상대방이 나의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한다던가 내 은혜를 잊고 배반한다면 당장 그에게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신부님을 보면서, 우리가 사랑할 때 ‘목적어’, 즉 대상이나 상대방의 반응에 연연하기보다는 “사랑한다”는 ‘동사’에 초점을 맞추어 ‘사랑’ 그 자체를 행하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