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신문을 뒤척이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피카소 전시회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나는 30여 년 전 경복궁 내 미술관에서 있었던 피카소전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쯤 되었을 것이다. 피카소가 막
사망하고 전시회가 한국에서 있었기에 그때도 신문 지상에 크게 화제가 되었던 소식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어쩌면 나와 내 동생이 평생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교육상 우리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초등학생인 동생은 어머니를 따라 전시관을 향했다. 아마
입장료는 그 당시 500원정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집안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어머니께서는 표를 두 장만 사서 동생과 나를 입장시키시고는
우리가 전시관을 둘러보고 올 때까지 어머니는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무리 어린 나였지만 어머니를 밖에 혼자 두고 안으로 들어가는
마음이 40이 넘은 내게 아직도 아픈 기억으로 두고두고 남아있었다. 신문을 덮고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어머니와 함께 피카소 전시회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비록 내가 미술에 문외한이고 부모님이 70이 다되셨지만 어머니가 꼭 살아계시기 전에 피카소 전시회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시청 앞으로 나오시라하여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그림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전시장을 돌고 전시장에 있는 카페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며 나는 30여년이나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감정을 풀 수가 있었다. 나는 부모님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마음이 따뜻해 옴을 느꼈다. 그리고 부모님께 되돌려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 중에 하루였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일 내가 어렸을 때 집안이 넉넉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지금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내 가질 수 있었을까? 내게 어려운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에 이것은 분명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부유함이 우리가 받은 달란트인 것처럼, 가난도 우리는 받은 달란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부유함이 있는 것처럼 가난함 역시 부유함의 상대적 무(無)가 아닌 ‘있음’ 그자체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는 ‘부’도 ‘가난’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단지 우리가 받은 달란트인 ‘부’와 ‘가난’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가만이 남을 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른 달란트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성격이나 능력 또 특별히 갖고 싶은 재능 등이 있지만 내게는 그런 달란트가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는 ‘없음’이라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단지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상대적 열등감을 느낄 수 있지만, 정작 우리는 ‘없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없음’을 가지고 지금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또 나의 가난함이다.
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시청 앞으로 나오시라하여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그림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전시장을 돌고 전시장에 있는 카페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며 나는 30여년이나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감정을 풀 수가 있었다. 나는 부모님과 헤어져 돌아오면서 마음이 따뜻해 옴을 느꼈다. 그리고 부모님께 되돌려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였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 중에 하루였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일 내가 어렸을 때 집안이 넉넉했다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지금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내 가질 수 있었을까? 내게 어려운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이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에 이것은 분명 가난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부유함이 우리가 받은 달란트인 것처럼, 가난도 우리는 받은 달란트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부유함이 있는 것처럼 가난함 역시 부유함의 상대적 무(無)가 아닌 ‘있음’ 그자체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는 ‘부’도 ‘가난’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단지 우리가 받은 달란트인 ‘부’와 ‘가난’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는가만이 남을 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른 달란트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성격이나 능력 또 특별히 갖고 싶은 재능 등이 있지만 내게는 그런 달란트가 없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는 ‘없음’이라는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단지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상대적 열등감을 느낄 수 있지만, 정작 우리는 ‘없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없음’을 가지고 지금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또 나의 가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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