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일치. 요즘 우리가 어느 단체에서나 흔히 듣고 말하는 말이다. 또한 그것은 한 단체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나 가정 안에서도 사용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느 단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문제이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과 하느님과의 소통과 일치이다.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와 소통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일치하고자 하신다.
소통이라 하면 내 의견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또 무엇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의견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소통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느님과 소통을 해야지, 내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들어주시지 않으면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은 참다운 소통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의견은 항상 옳은 것이며, 따라서 상대방이 내 의견을 듣지 않으면 소통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볼 수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그래야 내 의견을 양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은 절대 한쪽이 낮아지지 않으면 흐를 수 없다. 따라서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과의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의 모습과 담을 쌓고 있는데, 어찌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우리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치를 이야기한다. 어떻게 다양성을 인정하며 일치를 이룰 수 있는가? 어떻게 서로 다른 부부나 형제나 한 단체의 일원들이 다양성을 유지하면 일치를 이룰 수 있는가? 어찌 하나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양성의 일치이다.
우리가 이야기는 하는 한 마음, 한 뜻이란 무엇인가? 둘이 하나가 되면 안 된다. 둘의 일치가 잘못된 일치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일치는 각자 주님과의 일치를 통해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이다. 일치의 중심이 그리스도이여야 한다. 따라서 한 마음, 한 뜻이란 주님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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