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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및 성찰

고맙다는 말

by 손우배 2007. 12. 2.

호주에 내가 있는 공동체에는 5분의 신부님이 계시는데, 내가 제일 나이가 적다. 호주교회에는 반 이상이 60이 넘었기에 심지어 어떤 교구는 사제가 없어 성당 문을 닫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우리 공동체에도 아버지뻘 되시는 신부님은 물론 암으로 투병하고 계시는 신부님도 함께 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들은 집안일들을 모두 나누어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젊다보니 집안 잡일들을 찾아 하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작은 수고지만, 신부님들께서는 내게 늘 고맙다는 말을 한다. 사실 큰일도 아니고 그저 작은 수고일 뿐인데, 그런 말을 들으며 문득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얼마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부끄럽게도 그리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하루 중에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지냈던 날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놀라운 것은 얼마나 작은 내 수고가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고 감사하게 하는 지였다. 사실 때로는 작은 것들이 상대방에게는 무척 아쉬운 경우가 많다. 쌀을 들고 아들에게 보내려고 우체국에 왔는데 어떻게 보낼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계신 할머니 대신 포장을 하고 주소를 써 드릴 때 나는 작은 수고였지만 할머니에게는 절실한 도움인 것이다. 내게는 작은 도움이지만 상대방은 그 고마움을 마음에 새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서로를 연결하는 통로인지도 모른다. 바로 사랑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내게 남을 도울 힘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내가 할 수 있을 때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내게 아무런 힘이 없다면 결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다른 이에게 무엇인가 베풀 수 있다는 것은 은총이다. 어쩌면 그들을 위해 내게 지금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또한 내 자신이 널리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이며, 타인을 위한 삶이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이야기를 타인으로부터 들었는가?

 

만일, 전지전능하시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신다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가! 예수께서도 루카복음 12장 37절에서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어떤 때 내게 고마워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