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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자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다 (양심성찰에서)

by 손우배 2006. 7. 3.
우리가 어떤 상황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똑같은 상황을 우리의 무의식은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때가 종종 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만을 기억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의 마음에서는 두 개의 창(窓)이 서로 다르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데이터가 동시에 기억되며, 무의식이 받아들인 것은 나도 모른 체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가 내게 어떤 상황이 닫쳤을 때, 내 의식은 충분히 이성적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를 하였다. 그러기에 내게 그 상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내게는 알 수없는 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왜, 내게 지금 화가 있을까? 지금 나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한참을 지난 후에 나는 생각할 수 있었다. 내 의식은 충분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였지만, 내 무의식은 그것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나도 모르게 내게는 계속 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해 화가 나있을 때, “저것을 얼마나 가지고 싶을까?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얘야, 네가 화내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단다.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이러이러한 이유에서 네가 가질 수 없는 것이란다.”하면서 그 아이를 안아주고 타이르며, 화난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사실 우리들 모두는 내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되기에 우린 그러한 친구를 찾는다. 그것은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 의식은 내 무의식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래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니? 그런 상황에서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어찌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겠니? 그래 그 화를 내게 다 이야기해라. 내가 얼마든지 들어주겠다.” 그러면서 나는 내 말에 귀 기울여 정성을 다해 들으면서 내 무의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한편으론 타이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성찰할 때 이러한 우리의 무의식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나도 알지 못하고 응어리져 있는 마음에 귀 기울여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받아주면서 때론 타이르고 이해시켜 주는 대화를 내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이처럼 자신을 성찰한다면 내 안에 있는 무의식까지도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심리학에서도 언급되어지는 것으로, 심리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프로이드는 초자아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교육이나 자라오면서 형성된 윤리관들이 자신에게 “~해야 한다, ~하면 안 된다.”라는 기준을 만들어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저녁 때 그날 하루를 성찰하면서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의해 자신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했다. 무엇 무엇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라며 자신을 심판하고 단죄하며 계속해서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자아는 초자아에 의해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 자신이 들어주지 않으니 자아는 결국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성찰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공격하거나 상처를 주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 해서 진정 내 안에서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며, 우리가 하는 양심성찰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즉, 양심성찰은 단죄가 아니라 화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화해성사의 사랑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무의식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함으로 해서 우리는 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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