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성 자료

초자연적 현상에 관한 영의 식별

by 손우배 2012. 4. 8.

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815회, 2011.08.27.)’에서 한 목사님의 황당한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예수님께서 빙의하셨다며, 그 목사님은 물론 모든 신도들이 그 아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며 열렬히 숭배하는 것이었다. 지금 아들은 신도들의 기부금으로 미국에서 유학 중이며, 때때로 화상통화를 통해 신도들을 만나곤 한다. 또한 그 목사님은 한 젊은 여신도에게 자기 아들의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헌데 더욱 놀라운 것은 또 다른 여러 목사님들이 그 목사님을 따르며, 그 아들을 예수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만 들으면 그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단언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결코 일상적인 교회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목사님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안수를 하면 몸에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있고, 사람들은 기절을 하고, 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심하게 떨면서 자신도 모르는 글을 쓴다.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현상들이다. 그 목사님을 따르던 다른 한 목사님은 “그것은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분명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었기에 다른 목사님들도, 평신도들도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 목사님을 따랐던 것이다. 한 정신과 의사가 집단적으로 어떤 것에 몰두하면 그와 같은 현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그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많은 곳에서 신자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왜 굳이 그곳에서 계속 그런 현상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분명 이 세상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있다. 그러기에 심지어 다른 목사님들까지 그 교회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모두 선한 영으로부터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악한 영도 얼마든 초자연적인 현상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의 식별이 필요하다고 이냐시오 성인은 말했다. 실제 이냐시오 성인도 악한 영에 의한 초자연적 현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성인은 자신을 기쁨으로 채우던 현상이 악한 영으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이후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쫓아버렸다. 이처럼 때로는 선한 모습과 현상이라도 그것이 선한 영에 의한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영의 식별이 필요하다. 악한 영도 처음에는 선한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냐시오 성인은 식별을 위해 그 열매를 보라고 하였다. 그 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은 선한 영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지속적으로 참된 기쁨을 주고 있는지, 계속 선하고 옳은 길로 나를 인도하고 있는지를 식별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신수련에 나오는 영의 식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교회에서는 사적 계시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하고 신중히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계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교회는 먼저 증인들을 통해 객관성을 찾고 그것이 신약성경의 계시와 일치하는가를 조사한다. 하느님의 계시는 신약성경으로 완성되었다. 모든 계시는 신약성경에서 끝났다. 따라서 그 후에 일어나는 모든 사적 계시는 신약성경에 귀속되어야만 한다. 신약성경에 반하는 계시는 결코 선한 영에게서 오는 계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잘못된 초자연적 현상에 빠진 사람들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결코 악의란 없지 않은가! 답은 간단하다. 바로 악한 영이 선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교회 역사를 통해 이단들이 선량한 백성들을 오류에 빠뜨리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영의 식별은 오늘날과 같이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정보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참고: 사적 계시와 교회에 대한 순명

 

교회에서는 순명의 덕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적 계시는 많은 경우 주변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곤 하였다. 그러다 그것이 추후 참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그 어떤 성인도 교회의 주교로부터 침묵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 순명하지 않았던 성인은 없었다. 그 어떤 성인도 주교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도전한 성인은 없었던 것이다. 모두 순명하였고 또 침묵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하느님의 뜻일 때는 결국 당신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그것을 감추어 두시지 않고 세상에 드러내셨다. 예수성심의 계시를 받았던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코크 성녀도 심지어 수도회 공동체 내에서 조차 시기와 질투를 받았고 수도원 원장으로부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성녀는 그 모든 것이 상처 받으신 예수성심을 보속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순명하며 받아들였다. 그리고 실제 예수성심이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은 성인이 죽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와 우리가 원하는 때는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황에 순명할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몸소 세우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순명하지 않는 그러한 겸손하지 못한 계시는 그것이 참으로 하느님에게서 왔는지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