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및 성찰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손우배 2006. 4. 17. 20:33
오래전 나는 추운 겨울날 자동차 세차를 맡긴 적이 있었다. 어수룩한 작업복을 입은 청년은 추운 날씨에도 더러워진 차에 물을 뿌리며 정성스레 차를 닦았다. 그 청년은 매우 초췌한 모습이었으며 작업복 또한 기름과 흙에 뒤범벅되어 있었다. 나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렇듯 교만한 모습으로 저 청년이 세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저 청년은 왜 이 추운 겨울날 내 차를 저토록 정성스럽게 닦아야만 할까? 어떻게 이런 관계가 형성되었단 말인가? 만일 이것이 연극이라면, 나는 왜 이렇듯 편한 배역을 맡게 되었고, 저 청년은 왜 저런 힘든 배역을 맡게 되었을까? 이 연극이 있기 전 하느님께서 이 두 배역을 놓고 누가 세차하는 역을 하겠으며 누가 차주인 역을 하겠느냐고 물으셨다면, 나는 분명 하느님께 편한 역을 하겠다고 말하였을 것이고 저 청년은 "주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하며 기꺼이 그 어려운 배역을 맡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펼쳐지는 당신의 연극에서 보다 어렵고 힘든 배역을 기꺼이 맡은 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당신을 위해 그 어렵고 힘든 배역도 저토록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맡았으니… 그렇다면 나는 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어떠한 배역을 맡고 있는가?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선 배우들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배역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자신이 맡은 배역에 충실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맡은 배역을 게을리 하기도 한다. 또한 인류의 역사라는 이 연극을 위해, 쉬운 배역을 맡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어려운 배역을 맡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권력가나 영웅들처럼 모든 이들로 부터 주목 받는 배역을 맡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삶이기에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배역을 맡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연극을 위해 기꺼이 어려운 배역을 맡아 성의를 다하는 사람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실까? 우리의 인생은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과 같기에…

나는 이 일이 있은 후,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게 되어도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되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먹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순간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라면 먹는 배역을 맡았고 그 분식점 주인은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라면을 끓여주는 다시 말해 내게 봉사하는 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 배역을 맡은 주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과 라면 등 세상에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연극의 소품에 불과하다. 좀 더 넓은 의미로 세상에서의 명예나 일과 같은 무형적인 것들도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 자신의 역에 맞는 소품을 가지고 연극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품들과 어떤 사건이나 일도 그 자체에 의미가 있기보다는, 나와 그것들과의 '관계'가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연극이 끝난 후 우리에게 의미로 남는 것은 세상의 것들이 아닌 우리가 세상에서 만들었던 ‘이야기’들이 아닐까?

무대 위에선 우리들이 세상의 ‘소품’이 아닌 세상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함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