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자료

연옥과 천국에 대하여 (종말론)

손우배 2006. 1. 9. 17: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하느님은 선(善)이시기 때문에 온 세상의 창조물 역시 선(善)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우리는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으며, 세상 역시 악(惡)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과 세상은 창조된 그 순간의 목적과 선(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하느님과의 화해의 순간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이다.”

오래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연옥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씀하시어 유럽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에서 가르쳐온 것이다. 어떻게 죽은 후의 순간을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장소적 개념으로 “어디에 연옥이 있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곳에는 이미 시간과 공간이 없는 영(靈)의 세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연옥에서의 20년, 200년 하는 시간적인 개념도 인간의 시간으로 측정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이다. 연옥은 우리가 생각하는 형태로 이 우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연옥 영혼들의 불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영혼들은 이미 육체를 떠난 상태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육체에서 비롯되는 모든 정신의 개념들도 없다. 다만 그들에게 남는 것은 생전에 그들의 역사에서 육체와 물질의 관계에서 있게 된 그들의 정신의 역사가 영혼에 흔적으로 남게 되며 그에 의해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죽은 후 이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헛되고 부질없는 것들을 모두 벗어 버리고 참된 진리를 알게 되면 그리하여 우리가 절대 선(善)이시고 진리이신 그 분 앞에 알몸으로 서 있게 된다면 즉 그 분과 함께 지나온 우리의 인생을 한 장면 한 장면 파노라마로 엮어 함께 지켜보게 된다면 우리의 부끄러웠던 순간들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참된 사랑이시고 진리이신 그 분 앞에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고 절대적 존재이신 그 분 앞에서 불 아니 불 이상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한 고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옥의 고통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적 사랑이신 그분과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반드시 이러한 정화의 순간과 화해의 시간을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그 분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다가설 수 있다. 이렇듯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악은 한없이 부끄럽고 고통과 아픔의 순간이지만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치유해 주시고 완전케 해주는 것이 곧 연옥인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또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천국 역시 시간과 장소적 개념을 갖고 몇 년도에 이 세상 어느 지역에 천국이 있게 된다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천국은 인간 존재의 절대적 완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과 우주가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하고 친교를 나누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이 세상에서의 분리가 아니고, 세상에서의 “새로운 형태의 현존”을 의미하며, 새로운 형태의 존재이신 그리스도 안에 참여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 세상 공간의 안에도 밖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처럼 성인들과 일치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몸과 일치를 이루는 천국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다. 성서는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서 인간의 언어로서 표현하기 힘든 천국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또한 성서는 새 하늘 새 땅을 선언함으로서, 창조계 전체가 주님 영광의 그릇이 되도록 운명 지워져있음을 밝혀 주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느님 나라이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온전한 의미에서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의미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측면과 우주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우주적인 측면이라 함은 온 우주가 절대적 존재이신 그 분과 화해를 하는 순간을 의미할 것이고, 개인적인 측면이라 함은 우리 각자가 그분과 화해하고 온전히 하나 되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측면에서 천국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살아가고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진정한 회심을 통하여 이 세상을 사랑의 공동체로 이끌어 나간다면 천국은 이미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며, 바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의미에서의 천국이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예수께서 복음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에 오고, 완성되어질 하느님 나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