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데레사 효과
많은 이들이 생활이 어렵다고 하지만 이런 일을 접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 어려움에 동참하며 기꺼이 후원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이 아이의 기사가 우리 인간 내면에 각자 가지고 있는 성스러움을 움직이게 하여 밖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오인돈 신부의 중계로 우리들 내면의 거룩함이 표현된 것이다. 아마도 여러 수도자나 성직자들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무엇을 직접 내어주기 보다는 세상 사람들 각자의 내면에 있는 거룩함을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 이것은 수도자, 성직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책에서 “마더 데레사 효과”라는 글을 접한 적이 있다. 왜 마더 데레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가? 세계인들에게 마더 데레사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렇다고 마더 데레사가 노벨상을 받고 조직을 정비해서 좀 더 조직적으로 후원금을 모으고 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전 세계적인 NGO 단체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하던 일을 소박하게 계속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마더 데레사일까? 그것은 마더 데레사를 통해 세계인들은 잊고 지냈던 사랑의 마음을 깨닫고, 꼭 마더 데레사에게 후원금을 보내거나 주변 불우이웃에게 후원금을 보내지 않더라도, 각자가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그 역할을 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마더 데레사 역시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성스러움을 움직이게 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가 잊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성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성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으로부터 오는 내면의 울림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있는 내면의 성스러움은 무엇일까? 왜 나는 그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가? 언제 나는 그러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어떻게 나는 내 내면의 성스러움을 세상 밖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성스러움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리 잃은 ''캄''소녀에 소리 찾아줘 [세계일보 2005-09-27 21:24]
“과거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 고아를 위해 성심껏 봉사한 것처럼 우리도 이 아이에게 ‘소리의 세계’를 찾아줘
보답해야지요.”
최근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캄보디아 고아 소녀 삐치싸(4)를 안고 일시 귀국한 한국 천주교 예수회 소속
오인돈(41·사진) 신부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장애아 시설인 ‘자비의 빛’센터를 운영하고 있던 오 신부가 삐치싸를 만난
것은 지난해였다. 하루는 현지 선교사들이 아이를 안고 찾아와 “프놈펜 근교 정글 호숫가에서 발견된 여자 아이인데 좀 맡아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선교사 말에 따르면 발견 당시 탈진한 삐치싸의 살점을 벌레들이 마구 뜯어먹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삐치싸는
현지 고아원에서 얼마간 지내며 제법 성장해 있었다. 삐치싸는 아이가 발견됐던 호수 이름이라고 한다.
“몇달을 함께 지내다 보니
듣고 보지 못하는 것 빼고는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어요.”
그는 이 아이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가슴이
망방이질쳤다. 그는 고민 끝에 무작정 삐치싸를 안고 한국행을 결행했다. 여기저기에 도움을 구하던 중 성금을 보내준 이도 있었고, 여의도
성모병원에서는 삐치싸에게 인공달팽이관 수술을 해줬다.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삐치싸는 이제 반년 정도 특수언어교육을 받으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왼쪽 눈은 완전 실명된 상태이고 오른쪽 눈은 사물의 형태만 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세상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생기네요.”
오 신부는 삐치싸도 재잘대는 친구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름다운 새들의 날갯짓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수술 후 적응훈련을 위해 6개월 동안 아이를 떼어놓고 가야 하는 오 신부의 발걸음은 무겁다. 그러나 삐치싸를 도울 한국의 천사가
나타나길 고대하며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