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자료

엑스트라의 영성

손우배 2009. 8. 25. 16:30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7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후 수도원에 입회하였기에, 나름대로 사회생활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였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불행히도 회사 간의 계약을 성사시키고 이윤을 내기위해 최대한 나를 감추고 경쟁상대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회사는 이윤이라는 분명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에, 나는 마치 도박장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약점을 찾는 사람과도 같았다. 하지만 수도원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했고, 상대방을 높이고 나를 낮춰야만 했다. 이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고, 익숙하지 않은 내게 힘들게 다가왔다.

 

세상은 저마다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교회는 상대방을 드높이고 자신을 낮추어 기쁨과 평화를 얻는 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이상한 집단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나를 낮추며 기쁨을 찾는가? 저마다 높은 자리를 향해 달려가고,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려는 세상 사람들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몫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인생에는 내 몫과 내 몫이 아닌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은 너무너무 갖고 싶은데 내게는 없고 다른 이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것을 갖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 평화는 이렇듯 내 것이 아닌 것을 탐할 때 깨지기 시작한다. 또한 어떤 것은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데 계속해서 나와 함께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집안 환경이나 개인적인 성격 또는 상황 등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내 몫과 내 몫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내 몫이 아닌 것을 탐하지 않고, 싫지만 내 몫인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이렇듯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아, 나는 그리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것은 내게 평화를 주었다.

 

“내가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아는데 수십 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상의 중심에는 항상 자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놓을 때, 우리에게 진정 평화가 찾아오고 인생에서의 자신의 몫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엑스트라의 영성

 

세상 사람들은 늘 무대 중앙에 있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사람들로부터 갈채 받는 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 어느 단체에서든 자신이 소외되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될 때, 우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기에 우리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헌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너무나도 낯선 세상의 논리이다.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때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루카 22:24, 마태오 20:25-28)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에 먼저 다다랐지만, 무덤 안에 들어가는 것은 베드로가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에 베드로를 기다렸다가 무덤 안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몫과 역할을 알았기 때문이다.(요한 20:3-8) 또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추종하며 따랐던 제자들에게 “내가 아니라, 저분을 따라라”며 자신의 제자들을 기꺼이 주님께 보낸다.(요한 1:35-37)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님을 잘 알았고 또 기꺼이 사람들에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밝혔던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힘든 부분이다. 같은 일을 함께 했는데, 나보다도 옆에 있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내가 기꺼이 나를 드러내지 않고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기꺼이 물러설 수 있는가?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무대 위에 설정한다면, 예수님과 마리아는 무대 중앙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타는 그 주변에서 분주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루카 10:38-42) 이렇듯 무대 중앙에서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을 때, 나는 그 무대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지나는 사람, 즉 엑스트라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에 기쁨을 가질 수 있는가? 그것이 내 몫이라면… 예수께서는 타볼산에 오르시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올라가셨다.(마태오 17:1-9) 그 때 남아있던 다른 제자들은 어떤 소외감을 느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는 이처럼 기꺼이 그 주변인물이 될 수 있는가?

 

사실 우리들의 욕심은 모두 자신이 중심이 되고자 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평화를 잃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럴 때 우리가 기꺼이 자신을 비우고 그 몫을 다른 이에게 내어줄 때, 우리는 참된 기쁨을 얻게 된다. 그것이 바로 비움의 철학이다. 다른 이가 드높여 질 때 나는 기꺼이 그를 위해 낮아지는 것이며, 그것을 내 인생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 모두는 엑스트라이다. 그 누구도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오로지 주님만이 이 세상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시다. 따라서 우리 삶에서 “그분은 드러나고, 나는 낮아져야 한다(요한 3:30)”는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는 기꺼이 엑스트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삶의 주인이신 그분께 우리의 삶을 내어 드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엑스트라의 영성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삶을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가?

 

겸손은 하늘나라의 열쇠

 

겸손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근본이 되는 덕목이다. 세상은 상대방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낮추며 기쁨을 얻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자신을 낮추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추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비우면, 그분이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그 빈자리에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적인 기쁨이다.

 

겸손은 하늘나라의 열쇠이다. 가나안 여인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다.(마태오 15:21-28) 그러자 예수님께서 감복하시어 가나안 여인의 청을 들어주신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처럼 겸손은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마음까지도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이다. 백인대장이 “주님, 저는 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오 8:5-13)”라고 말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백인대장의 말에 감복하신다. 이처럼 겸손은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겸손한 자는 자신의 인생의 몫을 알고 기꺼이 세상에서 엑스트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을 드높이는 것이 이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을 드높이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엑스트라의 충만한 기쁨

 

언제인가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사제인 내 모습이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에 주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기도를 드린 적이 있다. 나의 보잘것없는 모습과 내 몫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감사하였던 것이다. 그런 후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영적위안 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충만함은 지금도 여운이 되어 내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엑스트라의 기쁨 충만한 체험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를 낮춤으로써 우리가 드높여지는 이 체험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예수께서 비천한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 위에서 볼품없이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을 한없이 낮추셨을 때, 하느님께서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던 바로 그 예수님의 체험인 것이다.(필리피 2:6-11)

 

이 세상에 진정한 의미에서 주인공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주님만이 이세상의 참 주인공이시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자신을 우두머리,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랫사람들과 다른 이들을 위해 스스로 엑스트라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아랫사람들과 다른 이들을 드높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몫은 모두 엑스트라이며, 오로지 그분만을 드높이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낮아져야 한다.

 

나는 오늘도 엑스트라의 삶을 꿈꾼다.

 

- 생활성서 2009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