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및 성찰

입체적으로 일하시는 하느님

손우배 2008. 6. 6. 11:43

나는 호주에 관광비자로 와서 지내다가 삼수련을 위해 훈련비자로 바꾸려고 수속 중에 있었다. 헌데 접수한지 3개월이 지나고, 계속해서 새로운 서류를 요구하니 차츰 지쳐가고 있었는데, 이번에 요구하는 서류에는 아주 자세한 개인정보를 물어보며 영어시험까지 요구하였다. 마치 불법체류자나 범죄자로 의심 받으며, 시시콜콜한 사적인 정보까지 요구를 하니 자존심도 상하고,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것을 보니 비자 발급을 안 하겠다는 것처럼 보여 내 안에 화가 가시질 않았다. 결국 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삼수련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를 통해 나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입체적으로 일하시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한 가지 일이었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관여되어 있었다. 직접적으로는 내 비자 발급을 담당하는 직원과 내가 있어, 이 일을 받아들이는 나의 반응, 비자 발급을 하는 직원의 반응이 있지만, 중간에서 이 일을 중개하고 있는 중개인의 반응, 또 비자 발급하는 사무실에서 업무와 관련된 다른 직원들과의 관계, 또 이 일을 지켜보는 내 주변 형제들의 반응 등이 있었다. 어떤 형제는 별로 관심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어떤 형제는 상대방의 어려움을 진심으로 함께하려 할 것이다. 또한 나는 모르지만 이 일을 통해 다른 연관된 일들이 각기 다르게 진행되어, 어쩌면 이 일을 통해 보다 심각하고 중대한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 예를 들면 비자 발급하는 직원들 간의 의견충돌 같은 것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결국 비자발급이 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여러 가지 형태로 관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한 가지 일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들의 마음에 각기 다르게 접근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계심을 느꼈다. 어쩌면 있게 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위해 가장 어렵고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은 나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나는 파급되는 다른 여러 가지 하느님 일의 완성을 위해 누군가 맡아야할 가장 어려운 역할을 맡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 역할을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위해 내가 기꺼이 맡은 것이고, 그것은 곧 내가 십자가를 지는 것과도 같다. 하느님께서는 전체 판을 보시고, 어느 한쪽을 울려 다른 여러 곳의 울림들을 보시며 또 그를 통해 각 사람들에게 당신의 작업을 하시는 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는 전체의 울림을 보시기 위해 또는 어떤 모양을 만들기 위해 어느 한쪽에 자극을 주어야 하셨을 것이다. 세상은 이처럼 서로의 관계가 얽혀 하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누구를 사랑하시어 그것이 좋은 상황이든 어려운 상황이든 그에게 필요한 어떤 상황을 나를 통해 만드실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누구에겐가 무시를 당하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이를 통해 당신의 어떤 작업을 그에게 하시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겸손을 담금질하실 수도 있지만, 만일 내가 이미 겸손한 사람이라면, 나를 담금질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겸손을 보고 그가 언제이고 자신의 잘못을 보게 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작업을 위해 누군가 어려운 역할을 해야 할 때, 기꺼이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의미하게 십자가를 주시지 않는다. 당신의 일을 이 세상에 이루기 위해 주시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비자문제가 잘되기보다는 이를 통해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리고 또 어려운 일이나 불편한 일이 생겨도, 내가 고통 중에 있게 되더라도, 비록 내가 어떤 일에 실패를 하더라도, 아마 주님이 지금 무슨 작업을 하시는 중인가보다 생각하며, “주님, 제 걱정은 마시고, 당신의 일을 하소서!”라고 말씀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