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순례의 길
이냐시오 성인은 늘 자신을 순례자라고 말하였다. 기본적으로 인생은 나그네의 길임을 우리는 안다. 나그네라 함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에 머물거나 여행 중에 있는 사람으로 여객(旅客), 길손, 행객(行客)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의 본향은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기에, 이 세상을 때론 나그네의 길로 표현하며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말하기도 하고, 지금은 나그네의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 그분과 함께 할 영원의 시간을 생각하며 희망에 젖기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라 함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생활하셨던 곳을 방문하여, 그분이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던 곳, 그분이 고통당하시고 죽으셨던 곳을 방문하며, 그분의 행적을 쫓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참된 성지순례는 바로 우리의 인생 자체이다.
나는 오래 전 길을 걸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지 창조주께서 사람이 되시어 걸으셨던 이 땅을 지금 나도 걷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분이 걸으셨던 땅을 나도 같은 모습으로 걷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황송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사셨던 바로 그 세상을 찾아온 순례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처럼 숨을 쉬고, 그분처럼 걷고, 그분처럼 보고, 그분처럼 느끼며, 그분처럼 식사하고, 그분처럼 생활하며 바로 그분이 걸으셨던 인간의 생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그분이 사셨던 인생을 살아가며 “아,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시어 이렇게 사셨구나!”를 깨달으며 살아가는 인생의 순례자들인 것이다. 100년 전에 이 세상에 없었던 우리들은 그분이 사셨던 바로 그 인생의 길을 걸으려 이 세상에 와 지금 그분이 사셨던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겪으셨던 희로애락을 느끼며, 때론 내가 고통과 슬픔 중에 있을 때, 그분도 전에 나보다 앞서 바로 이곳에 계셨음을 생각해 본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모욕과 멸시를 받고 있다면, 나는 그분이 세상에서 계셨던 바로 그곳을 지금 순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분의 성지에 와 있는 것이다. 모멸과 멸시 그 자체가 좋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계셨던 곳을 나 역시 사랑을 가지고 찾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그분이 어떤 인생의 상황에 계셨든 그분의 상황을 찾아가 “아, 예수님이 여기 계셨구나!”를 생각하며 그분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집 없이 여기저기에 머무르셨다. 따라서 우리가 집 없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돌보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계셨던 곳을 방문하여 그분께 사랑을 드리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소외받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도 바로 예수님이 찾으셨던 바로 그곳을 방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모두가 주님이 계셨던 성지를 순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인생의 나그네이지만, 모두 순례자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