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및 성찰
돌은 돌이고, 지폐는 지폐인 것을…
손우배
2007. 3. 16. 15:22
얼마 전 새 천원권과 만원권 지폐 발급으로 좋은 일련번호를 얻고자 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국은행 앞에서 밤샘 노숙을 하고, 또 기다리던 사람들 간의 다툼이 있었다는 뉴스보도가 있었다. 그저 천원권, 만원권의 지폐이지만 12345와 같이 특이한 일련번호가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한국은행 앞에서 북새통을 이뤘던 것이다.
그렇다면 1234321, 525252와 같은 일련번호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저 지폐일 뿐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가치의 기준을 만들어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그저 천원권, 만원권일 뿐이다. 만일 내 생년월일이 1993년 2월 19일이라면 내게는 19930219라는 일련번호가 의미가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련번호일 것이다.
오래된 물건들의 가치를 판단해 주는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해당 전문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가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으면 높은 가격을 책정하곤 한다. 어떤 때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기준을 만들어, “이러이러해서 얼마이다”라는 식으로 평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내게 크게 의미가 없는 기준일 때가 종종 있다. 참으로 그 감정사의 기준이 보편적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그저 물건의 가치를 구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기준은 아닐까? 물론 어떠한 의미도 돈으로 가치 평가될 수는 없으며, 돈 그 자체가 절대적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의 기준도 이렇듯 허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의심해 본다. 한 예로 우리 생활에서 미인이라는 기준도 50년, 10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름다움도 사람들에게는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귀금속 역시 그저 돌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긴다. 비싼 것, 희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특권의식 때문일까? 하지만 비싸고 귀하다고 하는 것도 그저 인간들의 상대적 기준은 아닐까?
돌은 돌이고, 지폐는 지폐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이렇듯 허망한 기준들 때문에 인생의 많은 힘들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1234321, 525252와 같은 일련번호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저 지폐일 뿐인데, 사람들은 스스로 가치의 기준을 만들어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그저 천원권, 만원권일 뿐이다. 만일 내 생년월일이 1993년 2월 19일이라면 내게는 19930219라는 일련번호가 의미가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련번호일 것이다.
오래된 물건들의 가치를 판단해 주는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해당 전문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나름대로 가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으면 높은 가격을 책정하곤 한다. 어떤 때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기준을 만들어, “이러이러해서 얼마이다”라는 식으로 평가를 하곤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내게 크게 의미가 없는 기준일 때가 종종 있다. 참으로 그 감정사의 기준이 보편적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그저 물건의 가치를 구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기준은 아닐까? 물론 어떠한 의미도 돈으로 가치 평가될 수는 없으며, 돈 그 자체가 절대적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의 기준도 이렇듯 허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의심해 본다. 한 예로 우리 생활에서 미인이라는 기준도 50년, 100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름다움도 사람들에게는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귀금속 역시 그저 돌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귀하고 가치 있게 여긴다. 비싼 것, 희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특권의식 때문일까? 하지만 비싸고 귀하다고 하는 것도 그저 인간들의 상대적 기준은 아닐까?
돌은 돌이고, 지폐는 지폐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이렇듯 허망한 기준들 때문에 인생의 많은 힘들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